나와 집이 맺은 관계에 대하여 신지혜 작가의 <최초의 집>

나와 집이 맺은 관계에 대하여
신지혜 작가의 <최초의 집>

Text | Eunah Kim
Image Courtesy of YOUR-MIND

동네 이름, 매매가, 면적으로 설명되는 것에 익숙해진 이 시대의‘집’에 대해 신지혜 작가는 낯선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집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는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어디인지, 집에 살며 생긴 독특한 습관이 있는지, 손님을 집에 어느 정도로 초대하는지.

 

지난 2018년9월 펴낸<최초의 집>에서 그는 나이도 직업도 주소도 각기 다른14명의 이들이 ‘자신의 집’이라고 기억하는 공간에 대한 기억을 밀도 높게 기록했다. 14명의 집을 기록한 14개의 글은 공통으로 이름, 출생연도, 직업, 거주 지역, 거주 기간으로 분류된 채 집의 외관 구조 입면도나 내부 평면 도면을 유일한 일러스트레이션 자료로 삼는다. 인터뷰이가 집의 평면을 그리며 파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면, 작가는 완성된 평면도에 기반해 공간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되묻고 짚어나갔다.

 

 

뭔가 남달라 보이는데 인터뷰이가 언급하지 않은 부분을 발견하면 작가는 질문했다. 예를 들어, 부엌이 방처럼 구획이 나뉘어 문이 달린 경우에 “여기 혹시 난방이 안 되지 않았나요? 신발을 신고 출입했다든지”라고 물으면, “아, 엄청 추웠어요. 맞아요. 바닥이랑 벽에 타일이 깔려 있고, 신발 신고 출입했어요. 어머니가 바닥에 물을 뿌려 청소하시던 기억이 있어요”라는 대답을 듣는 식으로 빈 곳을 메워 나갔다.

 

초가지붕의 농촌 주택부터 다다미가 깔린 일식 주택, 상가 주택,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등 저마다 다른 거주 환경에서 살았던 이들은 집의 지리적, 구조적, 생활환경적, 사회적 맥락이 그들에게 끼쳤을, 자신도 몰랐던 영향을 이야기한다. 책은 그냥 단독 주택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지은 신대방동 집에서 태어난 사진작가의 이야기, 그냥 아파트가 상계동 아파트 키드로 유년 시절을 보낸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그린다. ‘건물 혹은 매물’에서‘집과 사람’으로 자연스레 관점이 이동한다. 작가는 동네 약국 뒤에 달린 살림집에서 나고 자란 남명화 씨가 어릴 적 친구를‘떡볶이집 딸’, ‘표구사집 딸’이라고 부른다던가, 아파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장재민 씨가 친구들을‘1206호 친구’, ‘9동 친구’ 등으로 부르는 것을 인터뷰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한 흥미로운 차이점으로 꼽는다.

“박완서 작가는 <오만과 몽상>에서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방 하나가 없다는 건 짐승만도 못하다”라고 썼어요. 집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설계 사무소에서 일한 신지혜 작가는 건축만큼이나 건축이 가진 사연에 관심이 많다. 2015년, 이제까지 살았던 열한 채의 집을 기록한 책<0,0,0>에서 그는 자신의 집 이야기를 먼저 들려줬다. 아빠가 지은 집에서 태어나 지난 30년간 관계를 맺은 집들은 역시 직접 그린 도면으로 기록되었고 풍부한 묘사가 더해져 상상의 나래를 부추겼다. 그렇게 독자들의 상상 속에서 그 집은 도면이 아니라 풍경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번 <최초의 집>의 부제는‘열네 명이 기억하는 첫 번째 집의 풍경’이다. ‘풍경’은 단면이 아니다. 어떤 정경이나 상황을 포함하는 입체적인 개념에 가깝다. 작가의 말대로 ‘모든 집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세계’인 이유다.

 

 

“박완서 작가는<오만과 몽상>에서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방 하나가 없다는 건 짐승만도 못하다”라고 썼어요. 집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정감을 느끼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우선 주거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2년마다 이사를 해야 하거나 집주인이 언제 집을 빼달라고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집에 온전한 애정을 품기 어려울 테니까요.또, 추위나 더위, 비, 소음 등의 외부 환경과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있어야 합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원하지 않을 때 완전 밀봉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죠.” – 신지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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