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거실을 여행하다 남의집 프로젝트 대표 김성용

남의 집 거실을 여행하다
남의집 프로젝트 대표 김성용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자신을 ‘문지기’라 칭하는 김성용 대표는 지난해 1월부터 지금까지 70개가 넘는 남의 집 문을 열었다. 직장인의 평범한 고민 끝에 나온 이 거실 여행 프로젝트는 여럿이 집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도, 여행자에게 현지인의 집을 제공하는 에어비앤비도 아닌 제3의 주거 공유 사업이다.

이전에는 무슨 일은 했나요?

카카오에서 5년 넘게 일했어요. 카카오 뮤직, 카카오 택시 등의 사업을 개발하는 소위 ‘IT 문과생’이었고요. 남의집 프로젝트(이하‘남의집’)는 본래 주말 프로젝트였어요. 주말을 좀 재미있게 보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면서 본격적인 창업으로 이어졌죠.

 

어쩌다 남의 집 거실을 공유한다는 발상을 떠올렸는지 궁금해요.

시작점은 직장인의 평범한 고민이었어요. IT 문과생은 수명이 짧거든요. 그만두면 뭘 하고 살지 생각해봤어요. 제가 가진 생산 수단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30대 중반에 회사를 때려치우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커서 고민하던 차에 우리 집 거실이 눈에 들어왔어요. 당시 친한 형이랑 셰어하우스 형태로 3년째 같이 살고 있었는데 형이 공간 전문가라 집이 좀 예뻤거든요. 거실도 넓어서 집안에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렸고요. 저한테는 거실이 공공재이고 놀이터 개념이었어요. 순간 내 생산 수단은 거실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거실도 넓어서 집안에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렸고요. 저한테는 거실이 공공재이고 놀이터 개념이었어요. 순간 내 생산 수단은 거실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처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예약한 손님이 예고 없이 불참하는 노쇼 문제가 많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손님을 선착순으로 받지 않아요. 대신 제가 질문을 서너 개 던지면 신청자가 그에 대한 답변을 자기소개하듯 쓰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제가 답변을 취합해서 호스트에게 전달하면 호스트가 마음에 드는 손님을 선별하는 거죠.

 

가장 기억에 남는 남의집을 꼽는다면요?

‘남의집 아침’이요. 호스트가 그야말로 아침과 물아일체가 된 분이었어요. 새벽5시30분에 일어나서 글 쓰고 책 보고 시리얼 먹고 출근하는, 완벽한 아침형 인간이었죠. 가장 ‘남의집스러운’ 주제인 것 같아서 제가 먼저 호스트에게 제안했어요. 오전 9시에 아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 각자의 아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손님들한테 취향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어찌 보면‘취향의 공동체’를 주선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해요.

한 번은 찌라시를 주제로 모인 적이 있어요. 여행 다니면서 전단지나 종이 쪼가리 모으는 분들이요. 그때 남의집이 ‘취향의 엑스맨’ 역할을 한다고 느꼈어요. 영화<엑스맨> 보면 프로페서X가 지구상에 있는 엑스맨을 한 명씩 소환하잖아요. 근데 막상 엑스맨들은 그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 능력을 몰라요. 그냥 돌연변이인 줄로만 알고 있죠. (웃음) 취향을 나눌 때 가장 좋은 점은 현재의 나를 누군가에게 말할 기회가 생긴다는 거예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 나이만 돼도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대화가 안 돼요. 술 마시며 추억 팔이 하다 헤어지는 게 전부죠. 전 그게 좀 헛헛하더라고요. 그런 갈증을 남의집이 많이 풀어줬어요.

특별히 지향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뭐 이런 것까지’ 싶은 주제일수록 좋아요. 그럴수록 의외의 화학작용을 일으키거든요. 반대로 흔히 말하는 인플루언서나 유명인 호스트는 지양하는 편이에요. 원데이 클래스나 강연을 목적으로 연락하는 분들도 웬만하면 거절하고요. 기획자 입장에서는 별 재미가 없더라고요.

 

이제까지 받은 가장 기분 좋은 피드백은 무엇이었나요?

“여행 같았다”라는 말이요. ‘거실 여행 프로젝트’라는 기획도 실은 거기서 나왔어요. 루브르 박물관이 궁금해서 파리에 가는 사람도 있지만,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이방인이 되기 위해 멀리 떠나는 사람도 있잖아요? 남의집은 후자를 위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루브르 박물관은 입장료만 내면 들어갈 수 있지만 남의 집은 돈 주고도 못 들어가는 곳이죠. 그런 미지의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3~4시간 대화하는 경험이 말하자면 가성비 좋은 작은 여행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선 낯선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특별한 기득권이 없어요. 내일이면 안 볼 사람들이니 오히려 서로에게 솔직해지죠. 남의 집에서만이라도 이런 느슨한 관계를 즐겼으면 해요. 그게 여행의 즐거움이니까요.”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도 있나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싱가포르에 있는 교민 한 분이 호스트 신청을 했어요. 이게 웬 떡이냐 싶었죠. 일단 국내에서 손님을 찾아보고 모객이 안되면 교민들을 초대할 생각이었는데 놀랍게도 한국에서 정원이 다 찼어요. 심지어 4명 정원에 10명의 신청자가 몰렸어요. 게다가 신청 동기를 보니 원래는 싱가포르에 갈 생각도 없던 분들인 거예요. 순전히 현지 가정집을 경험하기 위해 자비로 항공권을 끊은 거죠. 싱가포르를 계기로 지금은 상하이와 파리에서도 각각 손님을 모집하고 있어요. 이런 걸 보면 여행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색다른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레이더를 바짝 세우고 사는 느낌이에요.

 

남의 집을 잘 여행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남의집이 늘 강조하는 두 가지 요건이 익명성과 단발성이에요. 우선 낯선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특별한 기득권이 없어요. 내일이면 안 볼 사람들이니 오히려 서로에게 솔직해지죠. 가끔 모임 끝나고 단톡방을 만들어달라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안 만들어요. 여행 친구가 좋은 이유가 뭐겠어요. 모든 관계가 그렇듯 지속적이 되면 피곤해질 수밖에 없어요. 남의 집에서만이라도 이런 느슨한 관계를 즐겼으면 해요. 그게 여행의 즐거움이니까요.

from Vill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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